[조선일보] “과거 1등부터 등수 매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뀌어 지자체에 타격이나 질책보다 잘한 것은 본받자는 의도”
매니페스토(manifesto) 개념은 1834년 영국 보수당 당수인 로버트 필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공약은 결국 실패한다”며 구체화된 책임공약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기초단체장이 내세운 선거 공약의 실효성과 실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선거공약 이행실적을 평가·발표한다. 이광재 사무총장과 매니페스토 운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2023 민선 8기 전국 기초단체장 공약실천계획서(로드맵) 평가’의 의의는.
“공약은 곧 ‘고용계약서’다. 다음 선거 때 고용계약서를 토대로 재고용이나 해고를 결정한다는 것을 상기하며 정책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 곧 권위적 행정을 버리고 토론하자는 것이 바로 매니페스토다. 평가 결과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지금부터 지역 비전 설정, 현안 해결에 대한 올바른 토론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총점 90점 이상을 SA등급, 80점 이상은 A등급으로 선정했다. 등급을 부여하는 의미가 있다면.
“과거 1등부터 등수를 매긴 상대평가를 실시하다가 절대평가로 바뀌었다. 지자체에 어떤 타격을 주거나 질책하려는 것이 아닌 ‘잘한 것은 본받자’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모두 SA등급을 받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선거 공약 1만7511개의 33.71%(5902개)가 실천계획서에 없거나 명칭·내용이 바뀌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공약이 자체 판단으로 변경·폐기되는 잘못된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선거에서 현안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나 치밀한 준비 없이 ‘희망 모음집’만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정책 공약과 꿈·희망은 구분돼야 한다. 무리하게 제시된 공약은 대부분 좌초된다. 특히 표를 얻기 위해 무작정 집값·땅값 올려주겠다는 공약은 시장 경제 시스템까지 해친다.”
-상대방의 의견에 무조건 반대하는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민주주의)가 만연해 있다.
“민주주의는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이 함께 불편한 약속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정책을 놓고 경쟁하면 승자와 패자가 없다. 그리고 정책의 실현으로 사회에 남는 게 있다.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분위기가 되려면 정책 공약을 선거 이후 소중히 다뤄야 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생활문화 매니페스토도 전개하고 있다.
“▲하객 앞에서 부부 약속을 공표하는 결혼 매니페스토 ▲아이의 생애 첫 약속, 첫돌 매니페스토 ▲초등학교 반장 선거 프로젝트 등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밑바탕에는 대부분 거짓말이 있다. 신뢰 사회를 위해 가정·학교에서부터 따뜻한 약속과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