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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탄]엉터리 공약

게시일 2006.3.29

‘엉터리 공약’(매니페스토)

“외상이라면 소도 잡는다.” 우리 국민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말일지도 모른다. 이런 모습은 선거판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후보자들은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식이다. 또 ‘아니면 말고…’ 라는 무책임한 행동이 난무한다. 그래서 판치는 것이 선심공약이다. 그야 말로 ‘빌 공’(空)자, 공약(空約)인 셈이다.

<정치인의 ‘양심선언’..매니페스토>
선진국들은 이 같은 폐해를 막기 위해 일찍부터 ‘매니페스토’ 개념을 사용해왔다. 매니페스토(manifesto)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과 같은 ‘선언’, ‘강령’을 뜻하는 라틴어 이다. 하지만 영국에서 시작된 매니페스토는 공약의 목표치와 추진계획, 재원조달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선거공약을 뜻한다.

매니페스토는 ‘SMART’의 요건, 즉 명확성(Specific), 측정가능성(Measurable), 달성가능성(Achievable), 타당성(Relevant), 기한(Timed)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따라서 ‘매니페스토’는 후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선거계약’과 같은 제도다.

‘매니페스토’의 출발점은 영국이다. 1834년 당시 보수당의 당수 ‘로버트 필’이 매니페스토의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그는 “겉만 번지르르한 공약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며 구체화된 공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 후 1997년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매니페스토’를 들고 나와 집권에 성공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블레어는 “25세 미만 청년 25만명을 고용하겠다”, “5~7세 학급 규모를 30명 이하로 축소하겠다”는 등의 구체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유권자의 호응을 얻은 큰 이유는 공약 하나하나에 세밀한 재원조달 방안을 제시한 데 있었다. 그는 학급 규모를 줄이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키 위해 1억8000만 파운드가 드는 엘리트 교육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이익을 낸 기업들에게 추가로 세금을 거둬 청년 실업자를 25만명 줄이겠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매니페스토’가 선풍이었다. 2003년 지방선거에서 ‘매니페스토’를 앞세운 정치 신인들이 주목을 받았다. 절대 열세라던 판세를 뒤집으면서 14명 중 7명이 현지사로 당선됐다. 이후 ‘매니페스토’를 중심으로 한 각종 네트워크들이 생겨나면서 크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단체장들은 ‘매니페스토 단체장 연맹’을, 시민단체들은 지역별 ‘매니페스토 추진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제대로 된 공약을 내걸지 않는 정치인은 발붙일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돼 갔다. 일본의 매니페스토 운동은 선거전에 내용의 적절성을 검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당선 후에도 ‘매니페스토’를 얼마나 실천하는 가를 확인하고 있다.

<국민을 상대로 하는 ‘선거계약’>
우리나라에도 최근 ‘매니페스토’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10여개 시민단체가 주축이 되어 ‘5.31 매니페스토 선거 추진본부’를 열었다. ‘추진본부’는 정당과 후보자를 대상으로 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물론, 협약을 맺은 후보자들의 매니페스토를 검증해 지방선거 전에 평가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매니페스토 운동이 이번 지방선거를 건전한 정책경쟁으로 유도할 수만 있다면, 한국의 정치수준을 몇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욱이 매니페스토는 과거 시민단체들이 시도한 ‘낙선운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정 후보를 못살게 구는 ‘네가티브’ 운동이 아니라, 정당하고 바르게 노력하는 후보를 도와주는 ‘포지티브’ 운동이라는 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매니페스토 운동을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다. 더욱이 한 술에 배부르기를 기대해서도 안된다. 매니페스토 운동의 전국적 확산은 물론, 매니페스토의 검증을 위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기준의 마련과 전문성 있는 평가자의 확보가 관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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